完/벚꽃엔딩

벚꽃엔딩 01

美談 2015. 2. 2. 12:40

 

 

 

요즘 난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꾼다.




 

 







벚꽃엔딩


W.다묘

 

 

 

 

 

 

 

01.









Part.1 Infancy Recollection

 

 

 

 

 

 

 




BGM / 에릭남 - 오래 전 안녕


 

 

 

 

 



나에겐 첫사랑이 있다. 흔히들 첫사랑을 풋사랑이라 하는 것처럼, 그 아이도 내겐 풋풋하면서 소중했던 사람이었다.

내가 14살이었던 때, 그 아이를 만닜다. 아이는 우리 반에서, 아니 학교 내에서 유명한 아이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평범하지 않던 아이의 인생 때문에.

 

 

 



아이는 어린 나이에 여객선 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다.

아이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배가 가라앉기 전, 아이에게 하나밖에 없던 구명조끼를 입혀주었다고 한다. 여섯 살. 너무 어린 아이가 견뎌내기 힘들었던 일이었기 때문일까, 그 후의 기억은 아이에게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단지 나중에 구조된 아이의 손을 잡은 건 굳건했던 아버지의 손도 보드라웠던 어머니의 손도 아닌, 낯선 향수내음이 느껴지던 이모의 손이었음을, 아이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 뿐이었으면 좋으련만, 아이의 고생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낯선 이모의 집에서 아이는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야 했다. 이모와 이모부는 다정하고 친절했기에 아이를 친자식처럼 대해주었지만 그들의 아이들은 틈만 나면 아이를 괴롭히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아이보단 조금 더 크고 나이가 많던 아이의 '사촌 형'들은 여러 괴롭힘으로 여린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그래도 아이는 이모네 부부에게 아무런 투정도, 고자질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들의 괴롭힘을 견뎌낸 것이 아이가 했던 행동의 전부였다. 아이가 견뎌내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들의 괴롭힘은 점차 더 심해져갔다.

 

 

 


그리곤.

어느 날, 조금 쌀쌀했던 가을의 어느 날. 열살이 된 아이는 이모의 심부름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에 돌아가면 자신을 칭찬해 줄 이모에 대한 생각에, 아이는 오랜만에 들떠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심부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영 돌아가지 않았다. 왜 돌아갈 수 없었는지, 돌아가지 못했는지 아이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제 나이에 어울리지 않던 씁쓸한 미소만 지어낼 뿐이었기에 난 그저 큰 일이 있었노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 정도의 세세한 이야기는 후에 아이가 내게만 알려준 것이었고, 단지 그 때 학교에 떠도는 소문에는 아이가 젊은 남자와 함께 사는데 그 남자는 아이와 혈연도, 친척도 아니라는 것과 남자가 뒷세계에서 유명한 사람이라는 가십거리 같은 소문들이었다. 그럼에도 그 소문들은 내게 아이에 대한 궁금증을 키우게 하기엔 충분했었기에 난 항상 소문의 주인공인 그 아이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노력했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난 1학년 내내 아이를 전혀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난 거의 포기하고 있었었다.

그러다 2학년 때, 우연히 내가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는 것을 알자 난 아이를 어서 보고 싶다는 나의 순수한 호기심이 다시 일어나, 결국 개학식 날 무작정 학교에 일찍 등교했었다. 난생 처음으로 등교했었던 이른 아침의 학교는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나는 조용한 학교를 이리저리 돌아다녀 새 학급의 위치를 찾아냈다. 2학년 5반. 그렇게 검푸른색의 글씨로 써 있는 팻말을 확인한 나는 앞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갔었다.



그리고, 그 곳엔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나보다 더욱 이른 시간에 등교한 듯, 이미 창가 쪽 맨 뒷자리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곧고 수려하게 뻗었지만 아직 어린티가 나는 이목구비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은 작은 체구, 그리고 사내아이치곤 제법 긴 검은머리였던 아이를 멍하니 보며 난 아이가 소문 속의 그 아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유도, 근거도 전혀 없었지만 난 이 아이가 내가 그렇게 보려고 노력했던 아이라고 확신을 했었다. 그리고 뭔가에 이끌리듯 아이의 옆자리에 가방을 놓고 앉아 멍하니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창문이 열린 탓에 살짝 살랑이던 아이의 머리칼과 편안해 보이는 아이의 표졍이 아침 햇살과 어울려 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고, 난 생각했었다.

아이는 학급 애들이 모두 등교하고, 선생님이 들어오실 시간이 되서야 부스스 눈을 떴다. 그 때까지도 아이를 보고만 있던 나는 아이의 까만 눈동자와 마주치고 나서야 시선을 돌렸었다. 아이의 새카만 눈동자와 마주치자 어린 난 무언가 하면 안되는 걸 하다 들켜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던 거 같다. 행여 아이가 내 행동에 화내진 않을까,하는 노파심도 함께.

하지만 나의 머릿속엔 아까 평온하던 아이의 표정이 여전히 아른거려 난 아이가 눈을 떴을 때에도 그렇게 평온한 모습이려나 하는 생각에 자꾸 다시 아이를 보고 싶었었다. 결국 망설임 끝에 아이를 다시 보자, 난 아까 전에 봤던 아이의 그 새카만 눈동자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었다.

아이와 나의 눈동자가 마주하고 얼마 후. 먼저 말을 건넸던 것은 아이였다. 잘 부탁해, 짝꿍. 그리곤 아이는 웃어보였다. 그건 내 또래의 아이에게마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가득 담긴 웃음이였다. 하지만 그 웃음이 아이에게는 너무 잘 어울렸었다. 이런 웃음은 이 아이가 아니면 지을 수 없는 것이란 생각마저 들게될만큼 말이다.

 

 

 

 

 

 

 

*

 

 

 

 

 

 

 

담임 선생님이 자리지정은 한달에 한 번, 선착순으로. 라는 규칙을 정해놓았기에 우리는 처음 한 달을 같이 보냈었고, 그 후로도 같이 앉기를 반복했다. 그 처음 한 달동안 어색하던 아이와 나의 사이도 어느샌가 가까워져 있었다. 그리고 한 달, 두 달, 같이 앉는 시간이 길어지고 아이와 나의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내 내면에는 아이에 대한 특별한 감정들이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마치 마른 숲에 떨어진 작은 불씨처럼, 처음에는 작은 호기심과 그저 알 수 없던 끌림이었던 나의 감정들은 어느 새 으레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바뀌어 버렸던 것이었다.


그런 감정이 내게 완전히 갑작스레 나타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단순히 아이에 대한 호감뿐이었던 나의 감정에 전환점이 된 일은 존재했다. 그건 바로, 4월 초. 벚꽃이 만개했던 맑은 봄날이었다.

겉모습은 약해보이고 심지어 여려보이기도 했던 아이였지만, 아이는 흔한 사내 아이들처럼 뛰어놀고,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은 체육시간이 제일 좋다고 늘 나에게 말하곤 했었다.

그 날도 체육 수업이 들었었기에 아이는 반 친구들의 사이에서 축구를 했고, 그날따라 유난히 나른하던 나는 잠이나 한숨 잘까 싶어 운동장 옆 잔디밭에 있는 벚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누웠었다. 누운 채 하늘을 올려다보니 한창 때인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맑은 날씨에 더욱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난 눈이라도 붙이려던 원래의 생각도 잊은 채로 하늘만 바라보았었다.

한참 뒤, 경기를 마치고 온 듯 온 몸이 젖은 아이가 티셔츠의 앞섬을 펄럭이며 내 옆에 앉았었다. 아이에게선 땀 냄새가 났지만, 그리 거부감이 드는 냄새가 아니었었다. 오히려 은은하게 아이를 감싸던 그 체취를 난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아이가 다가왔음에도 난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 때 아이와 나 사이에는 별 다른 말이 오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단지 하늘을 바라보다 가끔 느리게 눈을 깜빡였고, 아이는 방금 운동을 하고 온 탓에 가빠진 숨을 천천히 고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이의 가쁜 숨이 잦아들때 쯤, 수업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타종이 울렸었다. 아이는 잔디에서 일어나서 날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었다. 시리게 파란 하늘, 그리고 그날따라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던 벚꽃과 아이의 모습은 빈틈없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그 때의 난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생각했었다. 아이는 마치 벚꽃의 일부 같았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마냥 내 눈에서 아이는 하늘거렸다.

 

 

그 때 아이가 내민 손을 잡으면서 난 아이에게 시선을 사로잡히고, 마음도 내줘버렸다. 그리고 아이는 그 속에 깊이 자리잡았다.




그날이 아이에 대한 내 애정의 시작이었음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어린 난 나 자신이 아이에게 품은 감정을 알지 못했었다. 난 단지, 이 감정이 아이와 나의 우정의 연장선이라고, 그리 생각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난 그 이후로도 여전히 아이와 그저 절친한 친구 사이로 지냈었다. 하지만 왜인지 아이는 나와 어느 정도의 선을 두었기에 난 아이가 그어둔 보이지 않는 그 선을 넘으려고 노력했었다. 그러자 아이는 간접적으로 밀어내고, 또 밀어냈었다. 한 예로, 내가 아이와 함께 하교를 하려고 하는 날이면 아이는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내 생각을 눈치채고선 학교가 끝나자마자 바로 사라지곤 했다.

처음엔 아이가 바쁜일이 있는 것이려니란 생각으로 그냥 지나쳤지만,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자 난 아이가 의도적으로 나와 같이 가는 것을 피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챘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난 오히려 오기가 생겨 꼭 아이와 같이 하교를 하고 말겠노라, 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학교가 끝날 때 쯤이면 내 옆에 앉아있는 아이가 행여 또 먼저 사라질까 싶어 아이의 모습에 시선을 떼지 않았었다. 그러면 아이는 날 밉지 않게 흘겨보며 자신의 얼굴이 뚫리겠다며,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다 결국 제 손으로 나의 얼굴을 자신에게서 돌려버렸었다. 하지만 아이가 보지말라고 핀잔을 준 그 후에도 난 곁눈질로 아이의 행동을 계속 주시했었다.

얼마 후 선생님의 종례가 끝나고, 아이들이 가방을 싸기 시작하자 이미 갈 준비를 끝냈던 아이는 망설임 없이 일어나 교실을 나갔었고, 아직 가방을 채 싸지 못했던 나는 빠르게 가방을 다 싸고난 후 아이를 쫓아 나갔었다. 아직 아이가 멀리 가지 못했을거란 생각에 급히 신발을 구겨신고 학교 건물을 나선 나는 아직 교문을 빠져나가지 못한 아이의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었다. 드디어 아이와 같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꽤 넓었던 운동장을 있는 힘을 다하여 뛰어갔다. 곧 조그맣게 보이던 아이의 뒷모습이 제법 크게 보일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난 서서히 속도를 낯춰 아이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 때의 난 교문을 나설 때 아이의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 아이를 놀래켜줄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아이가 교문을 거의 벗어날 때 난 아이의 앞에 나타날 생각으로 다시 아이를 뒤따라 뛰어갔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기에, 난 순식간에 아이와 열 발자국 쯤 떨어진 곳에 위치했었다. 이제 조금만 더, 라는 생각으로 벗겨질 거 같이 내 발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신발을 애써 바로하며 속도를 더 올려 뛰어가려 할 때, 교문을 벗어난 아이의 앞에 차 한 대가 나타났었다.

아이의 눈동자만큼이나 새카맣던 그 자동차는 아이의 앞에 시동을 끄곤 멈춰 서더니, 곧이어 차의 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내렸었다. 아이의 눈동자를 닮은 새카만 차 만큼이나 새카만 옷과 선글라스로 몸을 감싸고 있는 남자였다. 그 남자는 내리자마자 차 앞에 가만히 서 있던 아이의 팔목을 잡아 끌어 차 안에 태웠었다. 강압적인 남자의 행동에 기뿐이 나쁜 듯 얼굴을 찌푸릴 뿐, 아이는 별 다른 반항을 하지 않고 그가 하는대로 순순히 차 안에 올라탔다. 아이가 차 안에 완전히 탄 것을 확인하자 남자는 아이가 탄 쪽의 문을 닫곤 자신도 차에 올라타더니 곧바로 출발해버렸다.

아이를 태우고 떠난 검은 차가 내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난 후에도 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눈 바로 앞에서 벌어진 그러한 상황에 당황스러운 것도 있었고, 무언가 위험한 기운을 풍기던 남자와 아이가 무슨 관계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풀이 죽어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갈 때에도 아이와 남자에 대한 생각은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다음 날 학교에 갈 때까지 난 줄곧 그 생각을 지워 버리지 못했었다. 그 생각 끝에 결국 학교에 가서 아이에게 물어보겠다고 다짐을 했던 난 학교에 가자마자 아이에게 물었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고.

아니. 별 일 없었는데? 아이에게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예의 그 순수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난 눈치채고 말았다. 아이의 대답과, 그 웃음과는 반대로 아이의 새카만 눈은 검게 일렁이고 있었다는 것을. 눈만은 제 주인의 감정을 숨길 수 없었던 듯, 아이의 진실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신이 숨기고 싶었던 것을 나에게 들켜버렸던 아이는. 그렇게. 위태로운 눈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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