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죽기 딱 좋은 날씨

4. 나는 누구인가? / 나는 누구인가 W.홍누나

美談 2015. 8. 29. 23:00

<본 작품은 뇽토리 신세계 OST 합작 '죽기 딱 좋은 날씨' 에 참여하신 글이며, 저작권을 비롯한 모든 권리는 해당 작가님들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W. 홍누나
@XXX__forever

 


 네가 잠적을 감춘 지 삼 개월이 훌쩍 넘었고 사람들은 슬슬 너를 찾는 것에 지쳐가고 있었다. 나는 애꿎은 담배만 뻑뻑 피웠고 너의 그 웃음, 선량하던 눈. 지용이 형. 하고 나긋하게 부르던 그 말투. 입을 맞추기 전 닿을락 말락 하던 그 숨결 과 곧 감길 것 같은 길다란 속눈썹. 입을 맞춘 후, 여자들 볼 터치라도 한 듯 붉어진 볼. 웃을 때 예쁘게 올려가는 입꼬리 까지.  아직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너와 함께 살 던 집으로 혼자 들어와 같은 밤을 보냈던 침대에 앉아서 우리가 사랑했던 많은 시간을 곰곰이 씹어 삼켰다. 삐걱이던 침대, 달뜬 숨소리, 뚝뚝 떨어지는 땀, 그리고 입술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미약한 신음까지. 가끔 젖혀지는 목에 이를 박던 그 묘한 전율까지. 우리는 정말 서로를 사랑했는데, 너는 어느 날 말 없이 사라졌고 나는 한 마리의 짐승처럼 너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디로 간거야, 승현아. 

 


“ 승현이는 이제 좀 잊어. 너도 사람처럼 살아야지. ”

“ 말 함부로 하지마. 나한텐 걔 밖에 없어. ”

“ 권지용. 너 그러다가 죽어. ”


 

하나 둘씩 나를 걱정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런 걱정의 시간도 아까워서 소주 잔을 엎었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쫒아왔지만 눈을 감고 무시하며 우리가 같이 살던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두 명의 사람이 살다가 하나가 없어지니 집은 유난히 더 커보였고 청소를 안해서 그런지 쿱쿱한 냄새가 코 끝을 아려왔다. 창문을 대충 열어서 환기를 시키고 너와 같이 자던 그 침대에 눕고는 베개를 끌어안았다. 난, 기다릴 수 있으니깐. 꼭 돌아와야해.  베개에는 아직 너의 냄새가 묻어있었고, 나는 그 베개의 향을 끝없이 탐했다. 바지버클에 손이 가고, 한 손으로는 베개를 끌어안은 채 그렇게 혼자서 욕정을 풀었다. 개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찝찝한 마음이 들어 그 감정을 잊기 위해 나른한 몸을 이끌고 빨리 잠에 들었다.


 꿈에서 네가 나왔다. 검은 머리에 하얀색 맨투맨.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은 네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서있었지만 나는 그저 좋았다. 승현아, 승현아. 이름을 애타게 부르자 너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순간 당황하여 한 발자국 다가가자, 너는 또 물러났다.


 

“ 우리 헤어져요. ”

“ 뭐? ”

“ 나도.. 처음엔 호기심 이였어요. 철없는. 이제는 아니예요. ”


 

 승현아, 무슨 소리야. 손을 뻗어 내 어깨를 잡았고 너는 매정하게 나를 밀어냈다. 더 이상 다정한 꿈이 아니였다. 악몽이였다.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너를 무너트리고는 두 손으로 네 목을 잡았다. 우린, 사랑 아니면 죽음이야. 손에는 힘이 들어갔고 너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발버둥 쳤다. 어쩜, 이 모습도 예쁜지. 빨리 사랑한다고 말해줘, 승현아.  네게 조용히 말하자 너는 싫다는 듯 고개까지 휙휙 저어가면서 내 손목을 붙잡았다.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부족한 듯 개새끼처럼 낑낑 거리며 나를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여기서 또 희열을 느껴버렸다. 이 상태로 너와 몸을 섞고 싶어. 너는 숨을 몰아쉬며 죽어갔다.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다가 어느 순간 힘이 탁 풀리더니 내 손목을 죽어라 잡고 있던 네 손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낙화하는 꽃, 그 자체였다.


 

“ 잊지마. 당신이 나를 죽인거야. ”


 

 너는 이 말을 남기고 죽어버렸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었고 급하게 셔츠를 벗어낸 후 다시 베개를 끌어안았다. 당신이, 나를 죽인거야. 계속 네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고 바지는 축축했다. 너를 죽이는 그 순간 몽정이라니. 한심했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네가 죽어가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방 안의 쿱쿱한 냄새는 여전히 진동하고 있었지만 곧 익숙해진 듯 다시 잠에 빠졌다.
 


 또 꿈이였다. 심지어 아까의 꿈 과 이어지고 있었다. 죽은 네 앞에서 나는 담배만 폴폴 피우고 있었다. 나는 너를 하얀 천으로 감싼 후 안아들어 옷장 안에 너를 앉혔다. 여기 있으면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않을거야. 영원히 나만 볼 수 있어. 차가워진 네 이마에 입을 맞추고 옷장 문을 닫았다. 괜히 뿌듯해진 마음에 웃음이 흘러 나왔고 그렇게 잠에서 또 깨고 말았다. 이번엔 땀도 흘리지 않았다. 바로 시선은 옷장으로 향했고 괜히 침을 꿀꺽 삼켰다.
옷장 문을 열자 하얀 천이 눈에 들어왔고 살짝 보이는 너의 머리카락과 쿱쿱하던 냄새가 세상을 만나 듯 확 퍼져나왔다. 꿈이 아니였다. 내가 정말로 너를 죽인 것 이였다.


나는 주저앉았고 옷장 속에 숨겨진 너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나는 왜 너를 죽인 기억을 다 지웠을까. 널 죽인 걸 후회하는 걸까. 급하게 옷장 문을 닫고는 서랍 안에서 커다란 자물쇠를 찾았다. 아무도 너를 못보게. 심지어 나도 이젠 너를 못 보게. 자물쇠를 잠그고는 열쇠를 입 안에 집어넣었다. 꿀꺽, 쇠가 식도를 타 내려가는 느낌은 끔찍했고, 물로 겨우 삼켰을 때는 괜한 배덕감 과 뿌듯함이 흘러넘쳤다. 유일하게 너를 볼 수 있는 열쇠는 내 뱃 속에 있어.  식은 땀이 다시 나는 느낌에 화장실로 가서 대충 세수를 하고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 속에는 내가 있었다.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보고 활짝 웃어보였고, 거울 속의 나 또한 나를 보고 웃어보였다.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바라보며 웃음을 주고 받았다. 새벽의 시간이 지나고 아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 지용아. 내가 먼저 말하자 거울속의 나 또한 입을 벙긋 거렸다. 안녕. 안녕, 승현아. 그러고는 눈을 잠시 감고는 캄캄해진 어둠 속에서 죽어가는 너의 그 표정을 생각했다. 또렷하다. 꿈이 아니였으니깐. ‘ 잊지마, 당신이 나를 죽인거야. ’ 그 마지막 너의 목소리는 얼마나 뜨거웠는지. 꿈에서도 그 열기가 실제로 느껴졌어. 물론 내가 널 죽인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지만. 그만큼, 나는 너를 사랑했으니깐, 나는 아무 죄 없어. 승현아.  순간 캄캄하던 눈 앞이 붉은 핏 빛으로 물 들어가더니 곧 우주의 느낌으로 빙빙 돌아가기 시작했다. 찬란한 눈 앞이 경이로워서 눈을 뜨고 거울을 바라볼 수 가 없었다.  푸른 우주와 붉은 우주가 빙글빙글 돌더니 결합이 되었고 순간 펑, 하는 감각적 느낌과 함께 나도 모르게 눈을 떠버렸다. 눈 앞에는 아직까지 거울 속의 내가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거울 속의 나를 엄지 손가락으로 벅벅 문질렀다. 유리와 손가락의 마찰음이  화장실을 가득히 메웠다.


 

“ 권지용, 너는 누구야? ”


 

 

권지용.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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