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죽기 딱 좋은 날씨

7. 아름다운 사람들/ MAMA DO W.880818G

美談 2015. 8. 29. 23:01

<본 작품은 뇽토리 신세계 OST 합작 '죽기 딱 좋은 날씨' 에 참여하신 글이며, 저작권을 비롯한 모든 권리는 해당 작가님들께 있습니다.>

 

 


< 뇽토리 신세계 OST '죽기 딱 좋은 날씨' 합작 - 아름다운 사람들 >
MAMA DO
by. 880818G

 

처음 만났던 그 날은, 생생하고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다 큰 어른은 아니었지만 그다지 어린 나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기억할 수 밖에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집안은 분주했다. 날씨가 유난히도 맑은 6월의 오후였는데 엄마는 울면서 캐리어에 짐을 챙기고 아빠는 어딘가에 전화를 하면서 화를 냈다가 울었다가 난리 법석이었다. 현관에 우두커니 서있는 날 다그치며 빨리 필요한 것들만 챙겨 나오라는 재촉에 어디 가는데, 라고 물었더니 도망가야한다고 횡설수설한 엄마는 반쯤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중학교 2학년. 열다섯살의 또래 아이들은 아마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겁을 내거나 울면서 엄마 말을 듣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열다섯살까지 그런 난리북새통을 몇 번을 겪었는지 모른다. 아빠는 지독한 놀음꾼에다가 마약쟁이였다. 안 좋은 상황을 몇 차례 겪으면 자연스럽게 동물적인 감각이 발달한다고, 아저씨는 내게 말하곤 했는데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던지 나는 그 날은 직감적으로 예전과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 날 다그치면서 소리지르던 엄마, 연신 초조해하던 아빠. 나는 짐을 싸는 대신 베란다와 소파 사이의 작은 틈새로 몸을 숨겼다. 도망갈 수 없다는 건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 어귀에 세워져있던 검은 차들을 보고 알았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남겨진 건 혼자였다.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아서, 도망갈 채비를 하고 있던 엄마가 아직 마무리를 하지도 못 했고, 아빠가 전화를 끊지도 못했는데 거칠게 문이 열리고 어찌 말릴 틈도 없이 아빠는 침입자의 발에 채여 거실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쏟아지는 발길질과 폭력에 잔뜩 웅크린 채로 윽, 윽 외마디 소리를 내뱉던 아빠의 모습은 한없이 작아보였다. 머리채가 붙잡힌 채로 울며 발길질을 받아내고 있는 아빠의 옆으로 쓰러지듯 끌려온 엄마는 연신 살려달라고 두 손을 싹싹 빌며 울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날이 끝이라는 건. 쏟아지는 발길질과 엄청난 욕설들이 이어지다 갑자기 뚝, 멈췄다. 고요해진 집 안. 이미 엉망이 되어버린 집 안에 또각이던 구두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등장했다. 갑자기 조용해진 주변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슬몃 고개를 내밀어 훔쳐봤을 때 거기에는 주황색 화려한 머리에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던 아저씨가 있었다. 쉽게 시선을 뗄 수 없는 그 압도적인 분위기에 내가 숨어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아저씨는 곧장 걸어와 엎드려있는 아빠의 등을 밟았다. 사신처럼 낮게 울리던 아저씨의 목소리에는 별다른 감정이 실려있지 않았다.

 

 


"현찰 1억 8천. 대마 포함 받아간 약만 돈으로 환산하면 대충 7억 5천. 꽁지 24억 7천. 갚을 수 있어?"
"가, 갚겠습니다!!! 꼭 갚을게요!!! 갚을테니까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쇼!!"
"갚겠다고 약속한 날짜에서 7개월이나 지났고, 돈을 갚을 능력이 안될 경우를 대비해 썼던 거 기억 나지?"
"살려주십쇼!!! 사장님 한 번만 살려주십쇼!!!"
"상환날짜가 지났어도 기한을 늘려준 건 난데, 일을 안 하고 오히려 와이프까지 팔아먹어서 약을 받아간 건 너지. 이럴 땐 어떻게 할 것 같아?"
"마, 마지막으로 하, 한 ㅂ.."

 

 


아빠의 울먹임 가득한 호소는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샤워기가 틀어진 것처럼 엄청난 피를 쏟으면서 아빠는 바닥으로 추락했고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에 엄마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대며 베란다를 향해 필사적으로 기어갔지만, 곧 아빠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총알이 이마를 관통하면 사람은 몇 초 뒤에 바로 죽는 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퐁퐁 솟구치는 피에 거실 바닥이 엉망이 되고 눈도 못 감은 엄마가 이제는 하나의 시체가 되어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혼없이 꺼진 눈동자를 마주하면서 나는 그제야 비로소 공포를 느꼈고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울음이 새어나갈 것만 같아서, 그러다 걸리면 나도 저렇게 될 것만 같아서 입술을 깨물면서 눈을 꽉 감고 숨죽인 채로 바들바들 떨면서 죽은 사람처럼 숨은 나를 찾지 못하고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흩어졌다. 두런두런 험악한 욕설이 섞인 말소리들은 집안을 웅성대다 사라졌고, 바닥에 널부러진 엄마와 아빠의 시체는 질질 끌려 치워졌다. 소파 뒤쪽으로 몸을 옮겨 더 어두운 구석으로 나를 감췄고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나를 발견하지 못한 채 익숙하고 신속하게 흥건하고 사방으로 튄 피웅덩이와 핏자국들을 닦아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순식간에 말끔해진 집안에는 아직 피비린내가 진동했지만 남자들은 볼일을 끝낸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시체는 하던대로 처리하고."
"네!!"
"시체만 처리하고 다들 퇴근해. 난 여기서 바로 들어간다."
"네! 형님!!"
"아, 내가 알아서 운전하고 갈테니까 형철이도 그냥 바로 퇴근해라."
"그치만-"
"내 몸 하나 못 지킬 것 같냐, 만약 못 지킨다면 죽을 때가 된 거고."
"아- 형니임! 죽는다는 말씀 하지 마십쇼!!"
"징그러우니까 앙탈부리지 마라. 가 봐."


 

 

아빠와 엄마를 데리고 남자들은 충성심 가득한 목소리로 깍듯하게 인사를 하더니 우르르 사라졌었다. 그리고 아저씨는 나를 나지막히 불렀다.


 

 

"꼬맹이 나와라."
"....."
"소파 뒤에 있는 거 아니까 나와."


 

 

온 몸이 순간 얼어붙는 것처럼 경직됐다가 식은땀이라도 나는 것처럼 더워졌다. 어떡하지? 이대로 죽는 건가? 입을 틀어막고 눈을 꽉 감은 어렸던 나는 겁에 질려 머릿속으로 온갖 시사 프로그램들의 사건사고들이 스쳐갔다. 아빠가 남겨놓은 빚을 내가 갚아야할까, 아니면 나도 죽는 건가.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날 숨겨주고 있었던 소파가 가벼운 솜인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단숨에 치워지고 나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냥 나오랄 때 나왔어야지 왜 사람을 피곤하게 하냐."


 

 

단추가 몇개 풀어진 붉은 셔츠, 검은 수트와 코가 뾰족하고 빛나게 닦인 구두, 뿌리 부분은 거뭇하지만 선명한 오렌지 색의 머리카락들이 엄마와 아빠를 죽였던 손가락들에 의해 쓸어올려졌다 우수수 흩어졌다. 총은 온데 간데 없고 아저씨는 날 드러내놓고 소파 팔걸이 부분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날카로운 턱선과 어른 남자의 거친 면도자국이 고스란히 드러난 얼굴은 우습게도 피곤해보였다. 졸린 것처럼 감은 것도 뜬 것도 아닌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훅 불어내던 아저씨는 느릿하게 날 바라보며 물었다.


 

 

"아저씨가 꼬맹이네 아빠랑 엄마 어떻게 하는지 다 봤어?"
"....네..."
"음... 어떻게 하기 전에 아저씨가 했던 말들도 다 들었어?"
"네...."
"그럼 아저씨가 괜히 꼬맹이네 아빠랑 엄마를 죽인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겠어?"
"....네.."
"꼬맹이네 아빠는 아저씨 회사에서 어.. 그러니까..."


 

 

낮게 깐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을 이어가던 아저씨가 눈을 한번 치켜떠 생각을 하더니 굵은 반지가 여러개 끼워져있던 손가락을 몇번 접었다 폈다.


 

 

"거의 34억..? 정도를 빌려가고 약속을 했단 말이야."
"......"
"우리 꼬맹이가 경제 관념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34억이라는 돈은 한 사람이 한평생을 일해도 쉽게 벌 수 없는 돈이야. 그런 돈을 빌려가놓고 갚지도 않고 도망다니면 아저씨는 두번째로 했던 약속을 이행할 수 밖에 없어요."
"알..아요..."
"꼬맹이는 똑똑해서 다행이네."

 

 


아저씨는 담배를 바닥에 비벼끄고, 기대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크게 켜더니 내 앞으로 다가와 쪼그려 앉아 나와 눈을 마주쳤다. 조폭, 건달, 사채업자, 살인자 라는 것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까이서 본 아저씨는 연예인처럼 잘 생겼었다. 무표정하게 "자- 꼬맹아." 라고 날 부르더니 잔뜩 겁먹은 날 알아주는 것처럼 "쫄지말고." 라면서 웃어주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크게 풀렸다.


 

 

"계산을 해보자. 아저씨는 계산이 확실한 걸 좋아하거든."
"....무슨 계산이요...?"
"예정에 없던 너라는 존재에 대한 계산."
"......"
"꼬맹이의 눈 앞에서 부모님을 살해한 건 아저씨가 잘못이야. 아동학대에 들어가거든."
"......"
"근데 아저씨는 아이들을 좋아해서 학대 같은 거랑 거리가 먼 사람이야. 그래서 꼬맹이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지."
"굳이..."
"꼬맹이는 아저씨가 무서워서 용서 해줄 수도 있어. 그럼 아저씨는 미안함을 뒤로 하고 퇴근을 하고 꼬맹이는 부모님도 없고 곧 압류될 이 집에 혼자 남겨지겠지."
"......"
"그래서 아저씨는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해."
"제안이요..?"

 

 


고개를 끄덕끄덕, 엄마와 아빠가 쓰러져 피를 뿜어대던 모습을 잊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데 아저씨는 그런 나를 홀리는 것처럼 안 어울리게 다정한 미소를 지은 채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죄를 씻고 싶고, 너는 부모님이 필요하고. 그래서 내가 널 데려가고 싶은데, 넌 어때?"
"네?"
"날 따라와달라 말하면 그래줄 수 있겠어?"

 

 


나는 어렸지만 세상을 아예 모르진 않았다. 그 어떤 조폭, 살인자들도 아이가 보는 앞에서 부모를 죽였다고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영혼 없이 빛을 잃은 엄마의 눈동자가 잠깐 머릿속에 스쳐갔지만 나는 지우기로 마음 먹었다. 내게 내밀어진 아저씨의 손을 붙잡자 아저씨는 씩 웃으며 다른 손으로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더니 날 일으켰다. 그래선 안된다는 건 알지만 이성보다 겁먹은 본능은 아저씨를 따랐다.

 

 


"꼬맹이가 씩씩하네."
"꼬맹이는 아니에요..."
"그래?"
"중...학생 인걸요.."
"맞네 꼬맹이."


 

 

주민등록증 없으면 꼬맹이고 애인거야, 아저씨는 느릿하게 한숨처럼 말을 뱉으며 날 이끌었다.


 

 

"이제 그만 가자. 물건은 새로 사줄테니까 여기껀 건드리지 마."


 

 

몇 발 먼저 앞선 아저씨의 등과 어깨는 단단하고 넓었다. 집을 한 번 둘러보고 아저씨를 따라 나서던 그 때의 나는 집 앞에서 날 붙잡는 것 같은 엄마와 아빠의 마지막을 애써 떨쳐냈다. 엄마라면 어땠을 것 같아요, 아마 나와 같았을 걸요. 합리화를 시키며, 내게 뻗어진 아저씨의 손을 붙잡으며.


 

 

"근데 아저씬 이름이 뭐에요?"
"권지용. 넌 알아."
"알아요?"
"이승현."


 

 

아저씨는 다정했다. 엄마와 아빠를 죽인 피가 묻은 손을 맞잡고 아직까지 놓지 못할 정도로. 아저씨의 어깨는 넓었다. 어리광처럼 투정 부리듯 기대 부비적대도 끄떡 없을 정도로. 아저씨는 아름다웠다. 눈 앞에서 식어가던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아저씨의 큰 손에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

 

 

신세계 영화는 무척 좋아하는데 제목 보자마자 쓰고 싶었던 배덕한 승리와 죄책감을 핑계로 승리를 탐내는 지드래곤으로 아고물을 썼는데 영 밍숭맹숭한 것 같아요...

 

제목은 픽시 로트 MAMA DO 에서 따왔어요. 사랑에 빠지면 안될 상대랑 사랑에 빠졌는데 엄마라면 어떻게 하셨겠어요- 라는 느낌인데... 허..허헣...

 

여러모로 많이 부족하지만 재밌게 읽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좋은 합작 열어주셔서 다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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